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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29. 22:37 해외베스트셀러
속죄 - 10점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문학동네

 

2008년 골든글로브 작품상과 음악상을 수상한 '어톤먼트' 원작.

천진함으로 저지를 수 있는 범죄는 '어린아이'에서 끝나야 한다. 문제는 이런 '어린' 욕망이 한층 더 교활하고 치밀해진 어른의 욕망으로 자라날 때다. 매큐언은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집단 무의식'에 관한 주제를 다루는 작가 중에서 단연 탁월하다. 1998년『암스테르담』으로 영국 최고의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하기 전까지도 신체절단과 근친상간 등 소재의 선정성과 거침없는 전개 때문에 그의 이름 뒤에는 '불온함'이라는 빨간 딱지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이번 작품『속죄』로 그는 명실공히 영국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랐다. 매순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서스펜스의 완급 조절 능력, 여기에 다른 문학작품에서 얻은 영감이나 캐릭터의 인상을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독자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요령 또한 뛰어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작품에서는 '생의 음모론'이랄까, 불편하지만 한편으로 속이 후련해지는 전복이 있어서 좋다. 멀쩡해 보이던 삶의 이면을 살짝 뒤집어서는 "네가 이렇잖아, 맞지? 별 것 아니지?" 하고 묻는 예리함.

이번 작품 『속죄』는 한 소녀의 천진한 오해가 불러일으킨 어이없는 사건을 통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폭력'의 여러 수위를 다루고 있는 수작! 1930년 영국의 어느 시골 저택. 감수성 만큼이나 예민한 결벽증을 가진 주인공 브리오니는 소설가를 꿈꾸는 열세 살의 소녀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집에 내려와 있는 언니 세실리아는 생의 권태로움에 조금씩 젖어들기 시작하는 영국 상류층 아가씨. 의대생이라는 전도유망한 미래를 앞둔 가정부의 아들 로비 터너와는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왔지만 최근 들어 싹트기 시작한 성적 긴장감으로 오히려 오해와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 사이다. 이 저택에 브리오니의 사촌언니인 롤라와 쌍둥이 동생이 찾아오고 이어 오빠의 친구이자 초콜렛 재벌 2세인 마셜이 손님으로 초청된다. 그리고 농밀한 여름 저녁, 쌍둥이 동생들을 찾아나선 롤라는 누군가에게 강간을 당하고 로비와 세실리아 사이의 알 수 없는 행동을 목격한 소녀 브리오니는, 단편적인 사실과 자신의 상상력을 교묘히 조작해서 로비를 강간범으로 지목한다...

작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느날 들이닥친 한 사건이 그들을 어떤 이해관계로 결속하고 내밀한 욕망과 타협하게 하는지, 그것이 또 얼마나 천진한 허울을 쓰고 나타날 수 있는지 파헤친다. 2부에서는 강간 혐의로 전쟁에 징집된 로비 터너의 행보를 통해, 개인의 뒤틀린 욕망이 야기하는 비극 뿐 아니라 그것이 집단 광기로 드러날 때 나타날 수 있는 폭력의 더 큰 수위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posted by colby